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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났는데 금이 박살난 이유

김팽맨·
·조회 0123456789001234567890·9

2월 28일, 이란 전쟁이 터졌다.

그날 밤 금 차트를 띄워놓고 잤다. 솔직히 말하면, 다음 날 아침에 뭘 보게 될지 이미 안다고 생각했다. 금은 한 달 전에 사상 최고가를 찍었고, 작년 한 해만 60%가 올랐다. 거기에 중동에서 미사일이 날아다닌다. 이 정도면 답은 정해져 있는 것 아닌가. 전쟁. 불확실성. 안전자산. 금.

그런데 다음 날 아침, 금은 떨어져 있었다.

하루 조정이겠지 했다. 그런데 그 다음 날도 떨어졌다. 그 다음 주도 떨어졌다. 결국 60일 만에 1,100달러가 빠졌다. 17% 폭락. 그것도 전쟁이 한창일때. 이쯤 되면 사람들은 묻는다. “전쟁 나면 금 오른다며?”

맞다. 다들 그렇게 배웠다. 그런데 시장은 원래 우리가 배운 문장 그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하면, 너무 많은 사람이 같은 문장을 믿는 순간 그 문장은 더 이상 돈이 되지 않는다. 외신은 이번 일을 두고 “금이 배신했다”고 썼다. 그런데 배신한 건 금이 아니다. 배신당한 건 우리 머릿속 공식이다.

금은 안전자산이 아니라, 팔 수 있는 자산이었다

금에 대해 가장 흔한 착각이 있다. 금은 위기 때 무조건 오른다는 착각이다. 사실 금은 그런 자산이 아니다. 금은 평소에 신용위험이 낮고, 장기적으로 화폐가치 하락에 대한 방어 논리가 있는 자산이다. 이 말과 “위기 터지면 즉시 오른다”는 말은 전혀 다르다. 전자는 자산의 성격이고, 후자는 투자자들의 희망사항에 가깝다.

이번 하락의 첫 번째 이유는 거창하지 않다. 마진콜이다. 전쟁이 터지면 주식이 먼저 맞는다. 채권도 흔들린다. 레버리지 끼고 포지션 잡은 사람들은 증거금 부족 전화를 받는다. 그러면 돈을 어디서 구하나. 손실 난 자산을 팔면 손실이 확정된다. 그러니 아직 이익이 난 자산부터 판다. 작년에 60% 오른 금이 바로 그 대상이었다.

안전자산이라서 안 팔린 게 아니다. 수익이 나 있었기 때문에 팔렸다. 계좌를 살려야 하는 사람에게 자산의 철학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지금 당장 현금화할 수 있고, 팔아도 수익이 남는 물건이 중요하다. 이걸 디레버리징이라고 부른다. 말은 어렵지만 구조는 단순하다. 빚을 줄이기 위해 뭐든 판다. 그중에서도 제일 먼저 팔리는 건 많이 오른 자산이다.

2008년 리먼 때도 비슷했다. 위기 초입에 금은 빠졌다. 그 뒤에 유동성이 풀리고 금리가 내려가면서 다시 올랐다. 사람들은 항상 뒤쪽 장면만 기억한다. 처음에 시장이 현금을 만들려고 우량자산까지 던지는 장면은 자꾸 까먹는다. 이번에도 똑같았다. 금이 안전자산이 아니어서 떨어진 게 아니다. 위기 초입의 시장에서 금은 ‘가장 멀쩡하게 팔 수 있는 자산’이었기 때문에 떨어졌다.

전쟁인데 연준은 돈을 풀지 않았다

전쟁이 금에 유리하다는 공식은 사실 이렇게 생겼다. 전쟁이 터지고, 경기가 침체되고, 연준이 금리를 내리고, 달러가 약해지면, 그때 금이 오른다. 사람들은 맨 앞과 맨 뒤만 외운다. 전쟁. 금 상승. 그런데 진짜 중요한 건 가운데다.

금은 이자를 주지 않는다. 배당도 없다. 그래서 금리가 높을수록 불리하다. 예금이나 단기채가 5%를 주는데, 금은 아무것도 안 준다. 그러면 금을 들고 있는 비용이 커진다. 금이 진짜 강해지려면 보통 금리 인하 기대가 붙어야 한다. 전쟁 때문에 경기가 꺾이고, 연준이 돈을 풀고, 실질금리가 내려가야 금이 편해진다.

그런데 이번엔 정반대였다. 전쟁은 경기 침체보다 먼저 인플레이션을 불렀다. 호르무즈가 흔들리면 유가가 오른다. 유가가 오르면 운송비가 오른다. 운송비가 오르면 거의 모든 가격이 오른다. 그러면 연준은 금리를 내리기 어렵다. 오히려 더 오래 버텨야 한다.

3월 FOMC에서 파월의 메시지도 그쪽이었다. 에너지 가격 상승이 물가를 다시 자극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고, 금리 인하 기대는 줄었다. 시장이 기대했던 “전쟁이니까 연준이 살려주겠지” 시나리오가 깨진 것이다. 금은 전쟁 자체를 먹고 오르는 자산이 아니다. 금은 전쟁 이후에 따라오는 통화정책을 먹고 오른다. 그런데 이번 전쟁은 금리 인하가 아니라 물가 재상승을 먼저 불렀다. 그러면 금 입장에서는 전쟁이 호재가 아니라 악재가 된다.

여기서 많은 사람이 틀렸다. 전쟁이라는 단어만 보고 금을 샀는데, 정작 봐야 할 건 전쟁 다음에 연준이 뭘 할 수 있느냐였다.

인도 트레이더가 시장을 흔들었다

이 대목은 좀 허탈하다.

사람들은 금 시장을 볼 때 중앙은행 매입량을 본다. ETF 자금 흐름을 본다. 헤지펀드 포지션을 본다. 달러 인덱스와 실질금리를 본다. 다 맞는 접근이다. 그런데 이번에 지지선을 흔든 건 뜻밖에도 인도 보석 트레이더였다.

타이밍이 절묘했다. 1월 29일 금이 사상 최고가 5,602달러를 찍었고, 그 직후부터 인도-태국 FTA의 빈틈을 노린 편법이 약 두 달간 횡행했다.

인도에서는 수입 관세를 피하기 위해 금 함량이 높은 제품을 백금 장신구로 위장해 들여오는 편법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들어온 금이 국제 시세보다 싸게 풀리면서 시장의 하단을 눌렀다. 온스당 83달러 싸게 매각됐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거창한 매크로 리포트에서 찾던 답이, 막상 까보니 보석상 재고와 관세 회피 동선에서 나온 셈이다.

규모가 만만치 않다. 두 달간 약 5톤 — 4월 27일 시세 기준으로 환산하면 한국 돈 약 1조 1,000억 원 어치다. 인도 정부가 못 받은 관세만 450 crore 루피, 한국 돈으로 약 705억 원.

이게 금 시장의 재미있는 점이다. 금은 거대한 매크로 자산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보석 수요와 관세, 밀수, 재고 흐름에 영향을 받는 실물 상품이다. 화면에서는 XAUUSD 한 줄로 보이지만, 실제 밑바닥에는 인도 결혼 시즌, 중국 소매 수요, 중앙은행 금고, 보석상 재고가 다 얽혀 있다.

그러니 금을 매크로만 보고 매매하면 가끔 이런 데서 맞는다. 파월만 보면 안 된다. 달러만 봐도 안 된다. 금은 월가의 자산이면서 동시에 뭄바이 보석상의 재고이기도 하다. 이번 하락은 그걸 다시 보여줬다.

잠깐, 그런데 왜 하필 인도였을까

이게 우연이 아니다. 인도는 금에 미친 나라다. 미친 정도가 어느 정도냐면,

인도 가정이 보유한 금만 2만 5천 톤 ~ 2만 7천 톤이다. 미국·독일·이탈리아·프랑스·러시아·중국 같은 세계 10대 중앙은행이 보유한 금 전부를 합친 것보다 많다. 인도 중앙은행(RBI)이 공식적으로 보유한 금은 약 880톤인데, 인도 아줌마들의 장롱 속에 그 30배가 들어 있는 셈이다. 가치로 환산하면 약 2.4조 달러, 한국 돈으로 약 3,500조 원. 인도 GDP의 88%다. (참고로 한국은행의 금 보유량은 104.4톤이다)

왜 이렇게 많냐. 결혼식 때문이다. 인도 결혼식에서 신부는 "신체의 모든 부분을 보석으로 덮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금 장신구를 두른다. 다우리(결혼 지참금) 문화도 한몫한다. 신부 가족이 전 재산의 절반을 쓰는 경우도 흔하고, 그 상당 부분이 금이다. 거기에 디왈리 축제까지 있다. 5일간 금 거래량이 11조~16조 원에 달하고, 첫 이틀 동안만 40톤 넘게 손바뀜이 일어난다.

요약하면 이렇다. 인도 시장은 글로벌 금값이 들어왔다가 빠져나가는 거대한 저수지다. 인도에서 매물이 풀리면 글로벌 시세가 흔들린다. 두 달간 5톤이라는 숫자가 작아 보이지만, 인도라는 시장의 가격 신호 영향력을 감안하면 차원이 다르다.

그러면 이제 금은 끝났나

그건 또 아니다.

이번 하락을 두고 월가 컨센서스는 의외로 강세 쪽에 가깝다. 이유는 간단하다. 금의 펀더멘털이 망가져서 빠진 게 아니라, 레버리지 청산과 유동성 압박 때문에 빠졌다는 해석이 많기 때문이다. 강제 매도는 성격이 다르다. 누가 금의 장기 가치를 부정해서 판 게 아니다. 계좌를 살리려고 판 것이다. 그런 매물이 어느 정도 소화되면 다시 가격이 올라올 수 있다.

수요도 완전히 죽지 않았다. 중국 중앙은행은 2026년 1월까지 15개월 연속 금을 샀다. UBS는 올해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약 950톤의 금을 매입할 것으로 본다. 앙은행은 개인 투자자처럼 차트 보고 손절하는 주체가 아니다. 가격이 좀 흔들려도 지정학, 외환보유고, 달러 의존도 같은 큰 그림으로 움직인다.

셀사이드 목표가도 여전히 높다. 골드만삭스는 5,400달러, JP모건은 최상 시나리오에서 6,300달러를 본다. 물론 셀사이드 목표가는 늘 후행한다. 잘 맞아서 보는 게 아니라, 시장이 어떤 논리로 움직이고 있는지 확인하려고 보는 것이다.

다만 다운사이드도 있다. 폴란드와 튀르키예 같은 큰손 중앙은행이 국방비 조달이나 자국 통화 방어를 위해 금을 팔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사주던 손이 파는 손으로 바뀌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UBS의 비관 시나리오는 4,600달러다. 이 선이 깨지면 “조정”이라는 단어로 포장하기 어려워진다.

그러니까 지금 금은 단순한 매수 자리도 아니고, 단순한 끝물도 아니다. 강제 매도는 지나갔을 수 있지만, 금리와 유가와 중앙은행 매도가 동시에 얽힌 복잡한 구간이다. 여기서 “전쟁이니까 금” 한 문장으로 들어가면 또 당한다.

진짜 문제는 금이 아니라 포지션이었다

이번 일을 이해하려면 금 자체보다 포지션을 봐야 한다.

전쟁이 터지기 전에 이미 모두가 금을 들고 있었다. 작년에 60% 올랐다. 사상 최고가도 찍었다. 뉴스는 계속 금을 안전자산이라고 불렀다. 중앙은행 매입도 기사화됐다. 달러 불신, 지정학 리스크, 인플레이션 헤지까지 모든 논리가 붙었다. 그러면 전쟁이 터졌을 때 새로 살 사람이 얼마나 남아 있었을까.

생각보다 많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이미 살 사람은 사놨다. 5,500 위에서 다 같이 같은 생각으로 탔다. “전쟁 나면 금이지.” 이 문장을 믿고 미리 들어간 사람이 너무 많았다. 그런 상태에서 진짜 전쟁이 터졌다.

새로운 매수자가 들어온 게 아니라, 기존 매수자가 차익 실현을 시작했다. 레버리지 계좌는 금을 팔아 증거금을 메웠다. 연준은 금리를 못 내린다고 했다. 인도 쪽 실물 물량은 지지선을 눌렀다. 그러니까 가격이 빠졌다.

이건 금의 배신이 아니다. 포지션의 배신이다.

시장에서는 누구나 아는 정답이 가장 위험하다. 누구나 아는 순간, 그 정답은 이미 가격에 들어가 있다. 그리고 가격에 들어간 정답은 더 이상 호재가 아니다. 그때부터는 그 정답을 믿고 들어온 사람들이 잠재 매물이 된다.

이번 금 하락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전쟁이 금을 떨어뜨린 게 아니다. 전쟁 전에 금을 너무 많이 사둔 사람들이 금을 떨어뜨렸다. 파월이 그 핑계를 줬고, 마진콜이 속도를 붙였고, 인도 보석상이 바닥을 흔들었다.

금이 5천 년 만에 안전자산 지위를 잃은 게 아니다.

그냥 이번 분기에 처음으로 전쟁 나면 금”을 써먹어보려던 사람이 너무 많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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