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조관계'는 누가 만든 말인가

4월 28일, 청와대와 통일부
같은 날 한국 정부는 두 가지를 발표했다. 통일부는 북한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부르는 문제를 공론화하겠다고 했다. 대통령은 주한미군 없이도 한국 군사력이 세계 5위라며 자주국방을 강조했다. 한쪽은 호칭을 양보하고, 다른 쪽은 동맹을 깎는다. 같은 정부, 같은 날, 같은 방향이다.

이 흐름의 출발점은 한 달 전이다. 3월 25일 서울 더플라자호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통일부와 통일연구원이 공동 주최한 학술회의 개회사에서 입을 열었다. "남북관계이든 한국-조선관계, 한조관계이든" 새로운 관계 설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같은 자리에서 그는 북한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호칭했다. 정부 고위 당국자가 공식 석상에서 '한조관계'라는 표현을 쓴 것은 처음이다. 통일부는 4월 28일 후속 브리핑에서 '조선' 호칭 사용 여부를 공론화를 거쳐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결정 주체는 그대로 행정부에 남아 있다. 헌법 3조와 부딪히는 사안을 국회 동의나 헌법 절차 없이 "공론화"라는 형식으로 우회하겠다는 의미다.
애초에 통일부가 정할 사안인가. 호칭 변경은 헌법 3조 영토 조항과 충돌하고, 다른 정권을 어떻게 부를지는 외교부 소관이며,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한 국가보안법 체계와 직접 부딪힌다. 통일부 단일 부처가 "공론화 결정" 형식으로 정리할 수 있는 층위가 아니다. 그런데 통일부가 정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단어 '한조'는, 김정은이 먼저 들고 나온 '조한'의 어순만 뒤집은 형태다.

처음이 아니다
정 장관은 1월 통일부 시무식에서도 같은 호칭을 썼다. 그때부터 북한 체제를 '존중'한다는 표현을 함께 사용해왔다. 문제는 이 어휘가 김정은 정권의 어휘와 정확히 맞물린다는 데 있다. 김정은은 2023년 12월 남북을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한 뒤 '북남관계'라는 표현을 버렸다. 대신 '조한관계'를 꺼냈다. 이는 외교적 거리두기가 아니라 한국을 영구한 적국으로 못 박겠다는 선언이었다. 한국 정부의 '한조'는 그 적대 선언의 어순만 뒤집어 받은 형태다.

어순은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한국이 지금까지 써온 '남북'은 방위 개념으로 양측을 함께 부르는 호명이었다. 국가 대 국가의 호명이 아니다. '한조'로 가는 순간 한국도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고, 자국명을 앞에 놓는 호명 방식으로 옮겨간다. 호명이 그 자체로 '두 국가' 전제 위에 올라선다.
헌법 3조와 부딪힌다
호명은 관계의 정의다. 한국 헌법 3조는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규정한다.

대법원 판례는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본다. 한국 정부가 북한을 '북한' 또는 '북측'이라 불러온 이유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공식 호칭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헌법 3조와 어긋나는 새로운 관계 정의를 행정부가 단독으로 시도하는 일이다. 정 장관은 이를 '평화적 두 국가론'이라 부른다. 김정은의 '적대적 두 국가론'에 대응하기 위한 거울 전략이라는 설명이다.
거울이라기에는 어긋난다. 김정은은 2024년 북한 헌법을 고쳐 '통일', '동족', '민족' 같은 단어를 삭제하고 한국을 '제1의 적대국'으로 명문화했다. 분단 70년 만에 같은 민족이라는 전제 자체를 일방적으로 폐기한 것이다. 어휘 변경이 헌법 개정과 한 묶음으로 갔다. 한국 정부의 '한조'는 어휘만 받고 헌법은 그대로 두는 구조다. 북한은 헌법으로 뒷받침된 호명을 들고 나오고, 한국은 행정부 단독 호명을 들고 나온다. 협상장에서 양쪽이 같은 무게로 마주 앉지 못한다.
명칭일 뿐이라는 반론이 따라붙는다. 헌법을 바꾸자는 게 아니지 않냐는 것이다. 명칭은 협상의 출발점을 결정한다. 두 개의 주권국가가 만나는 자리와, 한 국가가 자국 영토 일부의 무단 점거 세력과 만나는 자리는 의제 자체가 다르다. 호명이 바뀌면 다음 문장 전체가 바뀐다.
협상 테이블이 바뀐다
대북 협상의 구도가 바뀐다. '두 국가' 프레임이 양쪽 모두에서 굳어지면, 한국이 통일을 전제로 유지해 온 외교 자산이 약해진다. 개성공단의 법적 근거, 이산가족 문제의 인도주의적 위상,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국제 압박 조정 권한이 그렇다. 다른 주권국가의 내부 문제에 한국이 우선적으로 발언할 근거가 흐려지기 때문이다.
북한이 이 양보를 어디에 쓸지는 분명하다. 한국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공식 호칭으로 받는 순간, 평양은 그것을 국제무대에서 카드로 꺼낸다. "남측도 우리를 정식 국가로 인정했다." 이 한 마디는 핵보유국 지위 정당화 논리로 직결된다. 비핵화 협상의 전제 자체를 흔드는 카드다. 한국이 '평화'의 이름으로 내준 어휘를, 김정은은 핵을 지키는 도구로 쓴다.
타이밍이 묘하다. 김정은은 4월 23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남측을 향한 '대적투쟁'을 다시 강조했다. 매년 갱신되는 적대 선언이다. 북한은 '두 국가'를 적대의 언어로 굳히고 있다. 한국은 같은 어휘를 평화의 언어로 받고 있다. 같은 단어를 두 정부가 정반대 방향으로 끌고 간다. 이 비대칭이 협상장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외교사가 답을 갖고 있다. 한쪽이 '평화'로 쓴 어휘를 다른 쪽이 '굳히기'에 이용한 사례가 적지 않다.
군사력 5위라는 숫자
이재명 대통령이 4월 28일 국무회의에서 5위라는 숫자를 꺼냈다. "주한미군을 빼고 자체 군사력 수준이 세계 5위." 그러면서 안규백 국방부 장관에게 물었다. "자체적인 군사작전 역량은 준비하고 있느냐." 이어서 강조했다. "우리 스스로 방어하고 작전하고 전략·작전계획을 짜고 할 준비를 충분히 해놔야 한다. 전술·전략도 충분히 스스로 할 수 있게 준비해야 한다." 자주국방의 필요성을 분명히 했다. 그런데 이 5위라는 숫자가 자주국방의 근거로 쓰일 수 있는가.
Global Firepower 2026 평가에서 한국은 145개국 중 5위다. 북한은 31위. 재래식 전력만 보면 한국이 북한을 압도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숫자가 자주국방의 근거로 자동 변환되지는 않는다. 한반도 주변에는 군사력 2위 러시아, 3위 중국이 자리한다. 4위 인도까지 포함하면 글로벌 톱 5 중 셋이 한국 인근에 있다. 5위라는 한국의 지표는 이 지역 안에서는 평균치에 가깝다. 게다가 북한은 핵을 보유하고 있다. Global Firepower 지수에는 핵무력이 반영되지 않는다. 5위라는 숫자가 가리지 못하는 부분이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같은 날 받아쳤다. "북한과 혈맹인 러시아가 군사력 2위, 전쟁이 나면 제일 먼저 도와줄 중국이 3위다. 북한은 핵무기도 가지고 있다. 한미동맹 없이 우리 혼자 감당할 수 있나." 단순 정쟁이 아니라 데이터 해석의 문제다. 5위라는 숫자는 1대 1 비교에서만 의미가 있다. 동맹 없이 핵보유 적국 + 글로벌 톱 3 인접국이라는 환경에 놓이면 같은 숫자가 다른 의미가 된다.
대통령은 그날 한 마디 더 했다. "국가란 국가 스스로 지켜야지 왜 의존을 하나." 이 문장에서 진짜 문제는 '의존'이라는 단어다. 한미동맹은 의존이 아니다.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근거한 양국 간 약속이고, 한국은 매년 수조 원의 방위비 분담금을 내고 미국 무기 체계를 운용한다. 미국도 한국 주둔으로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거점을 확보한다. 양측 모두에 이익이 되니까 유지되는 구조다. 그걸 '의존'이라 부르는 순간 동맹은 한국이 미국에 매달리는 비대칭 종속 관계로 폄하된다. 어휘 선택에서 이미 동맹을 걷어내고 있다.
호칭 하나가 안보를 무너뜨린다고 말하면 비약이다. 호칭이 동맹의 논리적 기반을 침식하고, 그 침식 위에서 대통령이 동맹을 '의존'이라 부르고, 그 모든 것이 같은 날 정렬되어 나오는 구조는 비약이 아니다.
누가 누구의 문법을 따라가는가
김정은은 어휘를 바꾸고, 헌법을 고치고, '대적투쟁'을 매년 갱신한다. 한국 정부는 어휘를 받고, 헌법은 그대로 두고, '평화'라고 말한다. 한쪽은 적대를 제도로 굳히고, 다른 쪽은 그 적대의 어휘를 평화의 이름으로 받는다. 이것이 거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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