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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다양성 그리고 시민의식

차가운서핑··조회 0123456789001234567890·7

이 글은 제 경험과 관찰에 기반한 개인적 의견입니다. 특정 인물이나 단체를 가리켜 사실로 단정하거나 비방하려는 글이 아니며, 인용한 역사적·제도적 사실에는 공개된 출처를 달았습니다. 견해에 대한 반론은 언제든 환영합니다.

저는 90년대에 태어나, 00년대에 교육을 받고 자랐습니다.

자라는 내내 세계는 "다양성"을 외쳤습니다. 한국도 그 말을 빠르게 들여왔지요. 그런데 저는 그 좋은 말이 때때로 누군가의 뒷다리를 잡는 명분으로 쓰이는 장면을 보며 자랐습니다. 성인이 되어 사회에 나와서도 크게 다르지 않더군요. 흔히 "뒷다리 잡지 마라"는 말이 회자되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그 반대로 흘러가는 순간이 많았습니다.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미리 말씀드립니다. 이건 제 경험에서 출발한 글이라, 편향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쓰는 이유는, 이제는 한 번쯤 말해볼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서입니다. velude가 각자의 진실한 주관 위에서 건강하게 토론하는 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고요.

그래서 그 주관을 담은 첫 글을 끊어봅니다.

화내면 독재자, 반대하면 겁쟁이?

학생 때 들었던 P-TYPE의 가사 한 줄이 떠오릅니다. 여러 래퍼가 각자의 verse를 얹는 단체곡 〈동전한닢 (REMIX)〉에서, 그는 이렇게 뱉습니다.

"화내면 독재자 또 반대는 겁쟁이"

저는 지금 세상이 꽤 자주 이런 식으로 사람을 몰아간다고 느낍니다. 화를 내면 독재자가 되고, 반대하면 겁쟁이가 됩니다. 그리고 그 프레임 위에서 정작 해야 할 말, 해야 할 행동이 또래 압력(peer pressure)에 막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절대적으로 "옳은" 말이란 없습니다. 모든 말은 불완전한 인간이 자기 관점에서 내놓는 "주장"이니까요. 다만 그 주장을 어떻게 하느냐는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도한 프레임 위에 세워지는 입막음은 세계적으로도, 작게는 세 명 넘게 모인 조직 안에서도 일어납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것이 "다양성"이라는 좋은 개념 위에 한 겹 더 얹혀 작동하는 것 같습니다.

그 "다양성 존중"은 어디서 왔을까

여기서 잠깐 멈추고 싶습니다. 제가 비판하려는 그 흐름이 원래 무엇이었는지부터 짚는 게 공정하니까요.

지금 우리가 쓰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PC)"이라는 말의 뿌리는 의외로 오래됐습니다. 처음엔 1930년대 공산당 내부에서 "당 노선에 맞다"는 뜻의 기술적 용어였고, 1970년대 미국 신좌파는 오히려 자기 진영의 경직성을 자조하는 반어로 썼습니다. 그러다 1980년대 말~90년대 들어 미국 보수가 이 말을 비하의 무기로 뒤집었고, 2010년대엔 'woke(깨어 있음)'라는 말로 모양을 바꿔 이어집니다. (출처: Britannica, Wikipedia "Political correctness".)

출발은 분명 선했습니다. 2차 대전 이후 시민권 운동, 페미니즘, 다문화주의를 거치며, 오래 배제됐던 사람들이 일상의 언어에 박힌 차별을 걷어내려 한 것이지요. 학자들은 PC를 단순한 "언어 예절"이 아니라 누가 사회의 정당한 구성원인가를 다시 묻는 운동으로 봅니다. (Martin Spencer, Sociological Forum 1994; James Boyle, Duke Law 2000.)

그 영향은 실제로 컸습니다. 미국 대학들은 1980년대부터 차별 발언을 규제하는 speech code를 도입했습니다. 다만 1989년 Doe v. University of Michigan 판결에서 "모호하고 지나치게 광범위하다"며 위헌으로 제동이 걸리기도 했지요. 기업은 DEI(다양성·형평·포용)를 제도로 들였습니다.

그런데 2020년대 들어 반작용도 똑같이 거셉니다. 2024년에는 월마트·포드·해리데이비슨 같은 미국 대기업이 줄줄이 DEI 프로그램을 축소했고, 플로리다의 'Stop W.O.K.E. Act'는 표현의 자유 침해 소지로 연방법원에서 제동이 걸렸습니다(2022년 가처분, 2024년 항소심 유지). 한쪽이 밀면 한쪽이 되미는, 거대한 시소가 돌아가고 있는 셈입니다.

한국은 이 논쟁을 비교적 최근에 수입했습니다. 한 국내 연구는 "수십 년에 걸쳐 다져진 서구의 PC 비판을, 도입된 지 몇 년 안 된 한국에 그대로 옮겨도 되는가"를 묻습니다(이미준, 「정치적 올바름은 어떤 올바름을 추구하는가」, 정치사상연구 2023). 저는 이 질문이 정확하다고 봅니다. 우리는 좋은 점도, 부작용도, 그것도 압축해서 동시에 들여왔으니까요.

그러니 제 비판은 "다양성 존중이 틀렸다"가 아닙니다. 선한 개념이 도구로 변질되는 순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본 빈틈 — 선동

여기서부터는 제 경험에 기댄 관찰입니다. 일반화이고, 제가 만난 좁은 표본의 인상일 수 있다는 점을 먼저 적어둡니다.

제가 사회에서 만난,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명분을 앞세우는 일부 사람들에게선 이런 인상을 받곤 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모두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척, 사람 좋은 척. 그러나 그 추상적인 태도 뒤에는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혹은 유리해지기 위해 판을 짜는 움직임이 짙게 느껴질 때가 있었습니다. 누구도 성인군자는 아니라는 것이지요.

저는 정치를 "사회에 베풀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자선"이라고 배웠습니다. 비단 나라의 정치만이 아닙니다. 기업을 운영할 때도, 교사가 강단에 설 때도, 가정에서도 정치는 생깁니다. 결국 의사결정의 힘이 몰리는 곳이라면 어디서든요.

그런데 "다양성을 존중하며 힘을 얻는" 흐름에서 제가 느낀 빈틈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 추상적인 대외관계 뒤에 가려진 실력의 공백

  • 수치로 확인되지 않는, 정성적 평가에만 기대는 성과

이런 흐름이 극에 달하면, "다양성 존중"이 거꾸로 그렇지 못해 보이는 사람에게 프레임을 씌우는 명분으로 변질되는 것 같았습니다. 저 사람은 무능하다, 그러니 사회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 그렇게 선동으로 굳어가는 장면을, 저는 적지 않게 경험했습니다. 정말 사회적 바이러스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책임의 회피

해야 할 말을 막고, 해야 할 행동을 제지한 결과는 무엇일까요? 저는 결국 "뒷다리 잡기"만 남는다고 생각합니다.

말꼬투리 잡기, 행동에 대한 비판. 남는 것은 대외적으로 누구의 이미지가 더 좋으냐는 싸움뿐이고, 정작 책임은 아무도 지려 하지 않습니다.

정당하게 의견과 의문을 제시하는 사람에게는 획일화를 요구하고, 의문이 계속되면 정치적 힘으로 입을 막고, 관심이 덜한 다수를 끌어들여 특정인을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일. 저는 이것을 시민의식의 문제라고 봅니다.

무능은 성과로 걸러질 때 조직이 발전한다고 저는 믿는 편입니다. 리드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윗선으로 책임을 떠넘기고, "내 결정이 아니니 더 묻지 말라"며 의문의 싹을 정치적으로 잘라내는 조직은, 결국 도태됩니다.

다양성 존중 ≠ 해야 할 말을 못 하는 것

다양성에 대한 존중은, 해야 할 말을 삼키다 골든타임을 놓치는 것이 아닙니다.

엄격해야 할 것은 엄격하게 다뤄야 합니다. 규제할 것은 규제하고, 책임을 물을 것은 묻고, 질 것은 져야 합니다. 반면 풀어줄 것은 풀어줘야 하고요.

다만 이 판단이 추상의 영역에서 일어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실질의 영역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실질"을 가늠하는 가장 큰 주체는 비언어적인 문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비언어적 문화를 결정하는 것은 구성원이고,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시민의식입니다. 시민의식은 회사에도, 가정에도, 버스 안에도 존재합니다.

우리는 "다양성 존중"이라는 키워드 아래, 정작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사람과 시민을 무관심으로 내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때인 것 같습니다.

무관심을 관심으로

무관심이 팽배한 사회는, 소수의 조직이 의도적으로 선동하기에 딱 좋은 자리가 됩니다.

"내가 말해봤자, 시대랑 안 맞다는데…" 저는 이런 체념의 시대는 지나갔다고 생각합니다.

이상한 것을 이상하다고 말하지 못하는 순간, 균열은 시작됩니다. 그 피해는 결국 평범한 사람들에게 돌아오고요. 중심이 얼마나 비싼지는, 무너지고 나서야 알게 됩니다. 이건 거창한 정치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이 함께 사는 원리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올바른 시민의식 위에서, 더 나아지려는 한 명 한 명의 목소리가 모일 때 의미가 생깁니다. 그러지 못하면 결국,

  • 진정 인정받아야 할 사람이 인정받지 못하고,

  • 진정 일해야 할 사람이 정치에 밀려 일하지 못하며,

  • 능력 있는 이들이 조직과 나라에 무관심해질 것입니다.

저는 사회가 그렇게 변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극단으로 가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대학 진학률도, 고학력자도 늘어가는데 오히려 합리성을 잃어가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입니다.

정치적 프레임을 넘어, 합리적인 판단 위에서 각자의 몫을 다하는 사회. 저는 그런 사회를 바랍니다.

---

참고한 사실의 출처

  • Britannica, Political correctnesshttps://www.britannica.com/topic/political-correctness

  • Wikipedia, Political correctnesshttps://en.wikipedia.org/wiki/Political_correctness

  • Martin Spencer, "Multiculturalism, 'political correctness,' and the politics of identity", Sociological Forum (1994)

  • James Boyle, "Universalism, Justice and Identity Politics: From Political Correctness to Constitutional Law" (Duke Law, 2000)

  • MTSU First Amendment Encyclopedia, Campus Speech Codes / The Woke Movement and Backlash

  • 이미준, 「정치적 올바름은 어떤 올바름을 추구하는가: 사회정의관과 실천전략을 중심으로」, 정치사상연구 (2023)

댓글 1

김팽맨·
통찰력 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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